홍콩H지수 다음은 국내 반도체인가요
2026년 10월 23일 금요일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지만, 화창한 하늘을 보면 어디로든 바람을 쐬러 가고 싶은 날씨입니다.
오늘은 ELS 관련 기사가 눈에 띄어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았습니다. 홍콩H지수 사태까지 겪었으니 이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겠거니 싶지만, 금융시장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비슷한 장면을 거듭 보게 됩니다. 예금보다 조금 더 받고 싶었던 마음이 뜻밖의 큰 손실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날씨 좋은 가을날에 주말 행복한 시간 보내시면서 소중한 돈을 맡기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 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었습니다.
“이대로면 원금 까먹는다.”
지난 10월 21일 중앙일보에 실린 ELS 기사 제목입니다. 이번에는 홍콩H지수가 아닙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심지어 코스피200지수도 포함입니다. 낯선 해외시장 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기업과 지수가 등장했지만, 투자자의 불안은 낯설지 않습니다. 조기상환이 불발되고, 주가가 손실 판단 기준선 아래로 내려가고, 만기 전까지 회복하기를 기도하는 풍경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국내 증시가 고점권에 있던 지난 6월 중순부터 말까지, 이들 기초자산을 하나 이상 담은 원화 ELS가 약 1조원 발행됐습니다. 일부 상품은 현재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 상환 기준선을 밑돌고 있습니다. 물론 조기상환 실패나 현재의 기준선 하회가 곧 손실 확정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상품마다 관찰 방식과 만기 상환 조건도 다릅니다.
그러나 아직 손실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투자가 안전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저는 『잃지 않는 투자』에서 ELS의 위험을 설명하며 평범한 투자자 ‘철수’의 사례를 설명드렸습니다. 예금금리는 아쉽고 주식 투자는 불안했던 철수에게, 일정 조건만 충족하면 약정 수익을 지급한다는 ELS는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시장이 조금 올라도, 조금 내려도 원금과 수익이 돌아왔습니다. 몇 차례 경험이 쌓이자 불안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번에도 괜찮겠지.”
하지만 어느 만기에는 시장이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제야 철수는 자신이 무엇에 서명했는지 이해했습니다. ELS 투자로 받아온 쿠폰은 기초자산의 큰 하락 위험을 떠안은 대가였습니다.
국내에서 흔히 판매된 원금비보장형 ELS에는 투자자가 사실상 ‘풋옵션을 매도하는’ 구조가 들어 있습니다. 풋옵션을 사는 쪽은 주가 하락에 대비하는 권리를 얻고, 파는 쪽은 그 대가를 받는 대신 약정 조건에 따라 하락 손실을 부담합니다. ELS 투자자는 이처럼 위험을 떠안는 대가가 반영된 쿠폰을 받지만, 손실 조건이 충족되면 자신의 투자 원금에서 손실을 감당하게 됩니다.
결국 예금보다 조금 더 받는 투자인 줄만 알았는데, 누군가의 주가 하락 손실을 대신 떠안고 있던 것입니다.
물론 실제 보험계약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한된 수익을 받는 대신 특정 조건에서 큰 손실을 부담하는 구조를 비유한 것입니다. 평소에는 쿠폰만 보이지만, 시장이 크게 흔들리면 그 쿠폰을 받기 위해 약속했던 책임이 드러납니다.
가령 최초 기준가격이 100이고, 만기 손실 판단 기준이 60인 상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계약 조건에 따라 만기 가격이 60 이상이면 원금과 약정 수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50으로 끝나면 원금의 절반만 돌아오는 구조도 있습니다. 기준선 60에서 추가로 하락한 10만큼만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최초 가격 100에서 떨어진 폭이 원금 손실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ELS투자할 때 들었던 “40%나 떨어져도 괜찮습니다”라는 설명이 다르게 들립니다. 그 문장의 뒤에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훨씬 큰 손실을 부담하셔야 합니다”라는 친절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반복된 상환 경험은 오히려 판단을 흐릴 수 있습니다. 다섯 번, 열 번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으면 투자자는 상품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경험한 것은 시장이 계약의 손실 조건이 발생하지 않았던 결과일 뿐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고가 나지 않았던 기간이 더 길다고 안정적인 투자상품인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탄탄한 기업도 이 구조를 바꾸지 못합니다. 좋은 기업인지와 특정 날짜에 주가가 특정 수준 이상인지는 전혀 다른 질문입니다. 기업은 살아남고 실적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내 상품의 만기 평가일에 주가가 상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손실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회복을 기다릴 시간과 금융상품이 허락한 시간은 같지 않습니다.
홍콩H지수 사태를 겪고도 비슷한 불안이 반복된다면, 투자자에게 “다음에는 조심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ELS투자에서 중요한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에 앞서, 어떤 상황에서 얼마를 잃는지 알아야 합니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습니다”라는 문구보다 “1억원이 5천만원으로 돌아올 수 있으며, 그 계산은 이렇게 됩니다”라는 설명이 먼저여야 합니다.
사실 ELS정도 투자하는 투자자라면 “그 수익을 받는 대가로, 저는 누구의 어떤 위험을 떠안게 되는지? 를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분이 이해가 안가면 ELS투자를 안하셔도 됩니다. 시장에 있는 어려운 상품을 이해할 의무도, 모두 투자할 이유도 없습니다.
무모한 투자는 꼭 큰 욕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예금보다 조금 더 받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 감당하기 어려운 계약이 붙을 때 시작됩니다. 그래서 반복되는 손실 앞에서 필요한 것은 투자자를 향한 훈계보다, 그 작은 기대와 큰 책임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잃지 않는 투자는 더 높은 수익률을 찾기 전에, 내가 감당하지 못할 약속을 거절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중앙일보, 「이대로면 원금 까먹는다…녹다운 ELS ‘녹인 포비아’」, 2026년 10월 21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71417